석사 2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석사 2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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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August 2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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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1.1 중요한 문제부터 고른다

원문의 첫 문장은 세계 수준의 연구를 하러 왔으니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라는 말이었다. 이어서 해밍의 조언이 나온다. 우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문제를 하라. 증분 문제에 끌려가지 마라.
해밍의 강연을 다시 읽어보니 세 가지가 계속 반복된다.
지식은 복리로 붙는다. 능력이 비슷한 두 사람이 있을 때 한쪽이 10퍼센트 더 일하면 산출은 두 배 넘게 벌어진다는 것이 그의 관찰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과장 같았는데, 아는 게 늘수록 배우는 속도가 빨라지고 배우는 속도가 빨라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는 순서로 보면 납득이 된다.
문을 열어두는 사람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문을 닫고 일하면 오늘은 더 많이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주는 단서를 놓친다. 방해는 비용이 아니라 입력이다.
중요한 문제를 고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가 큰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어야 실제로 붙을 수 있고 못 한다고 생각하면 거의 확실히 못 한다.
나는 문제를 두 축으로 놓고 본다. 풀리면 분야의 질문이 바뀌는가, 그리고 지금 내 GPU와 데이터와 남은 시간으로 검증되는가.
그림 1. 문제 선택 격자
그림 1. 문제 선택 격자
그림 1. 문제 선택 격자
제일 조심할 칸은 오른쪽 아래다. 쉽고 확실하게 한 편이 나오는 자리. 편수는 늘고 이름은 안 남는다. 원문이 편수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한 게 정확히 이 칸이다.
왼쪽 위는 버리는 칸이 아니라 남겨두는 칸이다. 지금은 안 되지만 목록에 적어두면, 반년 뒤에 새로 배운 것 하나로 오른쪽으로 넘어오는 일이 실제로 생긴다.
문제를 고르는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요즘 연구자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얘기다. 마이클 닐슨은 연구자를 문제 해결자와 문제 창조자로 나눴다. 잘 정의된 유명 문제를 기술로 푸는 쪽은 보상이 빠르다. 어려운 문제를 깔끔하게 풀었다는 걸 누구나 알아보기 때문이다. 문제를 새로 만드는 쪽은 알아봐 주는 데 시간이 걸린다.
감각을 키우는 방법으로 자주 언급되는 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명시적으로 예측을 적어두고 나중에 맞았는지 확인하는 것. 이 실험은 이렇게 나올 것이고 그러면 나는 이걸 믿게 된다고 미리 적어두면, 나중에 자기가 왜 틀렸는지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정보 다이어트를 관리하는 것이다. 트렌딩 아카이브 목록과 단톡방 대화만 보면 남들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지적인데, 뜨끔했다.
내 규칙 - 문제 목록을 하나 만들고 분기마다 다시 매긴다. 칸이 바뀐 문제는 왜 바뀌었는지 한 줄 적는다. - 새 실험을 돌리기 전에 예측을 먼저 적는다. 어떤 결과가 나오면 무엇을 믿게 되는지까지. - 한 달에 한 번은 내 주제와 상관없는 세미나에 들어간다. 문을 닫아두지 않기 위해서.

1.2 편수가 아니라 읽히는 논문

원문에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문장이 이거였다. 편수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중요한 논문을 쓰자. 영향을 남기고 실제로 읽히는 논문. MIT나 스탠퍼드 같은 곳 사람들도 읽을 만한 논문.
이건 기준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초고를 쓰기 전에 이 논문을 누가 읽을지 한 문장으로 못 적으면, 아직 쓸 때가 아니라는 신호로 삼기로 했다.
원문에는 제목과 서론에 대한 조언도 따로 있었다.
제목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서론은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절이다. 어떻게 쓸지 오래 고민해야 하고 가장 마지막에 써야 한다. 그러려면 나머지가 마감보다 훨씬 전에 끝나 있어야 한다.
마지막 문장이 진짜 조언이다. 서론을 마지막에 쓰라는 말은 사실 나머지를 일찍 끝내라는 말이다. 나는 내부 마감을 실제 마감보다 2주 앞에 두기로 했다.

1.3 결과가 아니라 과정

결과 지향이 되지 마라. 과정과 여정의 중요성을 잊지 마라.
연구에 즉각적인 보상은 없다. 좋은 연구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작은 성공 하나를 얻기까지 일련의 실패를 지나야 한다.
이 말을 다르게 옮기면 실패를 빨리 많이 겪는 쪽이 이득이다.
그림 2. 실패를 굴리는 루프
그림 2. 실패를 굴리는 루프
그림 2. 실패를 굴리는 루프
첫 시도에 풀렸다면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지적이 특히 인상 깊었다. 문제가 너무 쉬웠을 수 있다. 실제로 내 트랙에서도 파일럿에서 잘 나온 수치가 본 실험에서 부호까지 뒤집힌 적이 있다. 그때 배운 건 파일럿을 믿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잘 나왔을 때 더 의심하라는 것이었다.
실패를 기록으로 남기는 관행이 해외에는 이미 있다. 멜라니 스테판이 2010년에 네이처에 실패 이력서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프린스턴의 요하네스 하우스호퍼가 자기 실패 이력서를 공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떨어진 학위 과정, 못 받은 연구비, 거절당한 논문을 항목별로 적은 문서다. 그가 쓴 이유가 핵심이다. 내가 시도한 것 대부분은 실패하는데 그 실패는 보이지 않고 성공만 보인다. 그래서 남들은 내가 하는 일이 대체로 잘 풀린다고 착각한다.
내 규칙 - 죽은 가설, 기각된 지표, 부호가 뒤집힌 셀을 날짜와 함께 남긴다. - 파일럿이 예쁘게 나오면 재현부터 돌린다. 축하는 그다음이다. - 한 번에 하나씩만 바꾼다. 무엇이 죽였는지 알아야 다음이 있다.

1.4 항상 왜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원문에 짧게 한 줄로 있었다. 언제나 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짧지만 이게 제일 어렵다. 왜 이 지표인가, 왜 이 데이터셋인가, 왜 이 층인가, 왜 이 임계값인가. 관행이라서 그렇게 했다는 답이 나오는 순간 그 자리가 논문의 구멍이 된다.
그림 3. 연구의 다섯 단계와 무게중심
그림 3. 연구의 다섯 단계와 무게중심
그림 3. 연구의 다섯 단계와 무게중심
박사 과정의 전체 흐름을 문제 발견, 정식화, 해결, 검증, 전달의 다섯 단계로 놓고 보면 앞의 둘이 가장 중요하다. 원문의 지적이었다. 해결과 검증은 배우면 되지만 무엇을 물을지는 아무도 대신 정해주지 않는다.
회사와 다른 점도 여기 있다. 회사는 돈을 벌려고 움직이고 연구는 지식을 만들려고 움직인다. 그래서 연구에서는 왜라는 질문이 사치가 아니라 업무다.
원문에 있던 비교 한 쌍도 적어둔다. 머리 좋음보다 꾸준함, 빠른 사고보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번뜩임보다 끈기.

2. 지도교수와 어떻게 일할 것인가

원문에서 가장 길고 구체적이었던 대목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지도교수는 같은 문제를 함께 풀려는 동료다. 어느 날 결과를 들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연구 과정 전체에 지도교수를 포함시켜야 한다. 문제나 장애물이 생기면 혼자 씨름하지 말고 즉시 상의해야 한다. 감동시킬 필요는 없다. 학생으로 받은 시점에 이미 충분히 판단은 끝났다.
대학원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지도교수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시간을 많이 쓰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아내라. 경험을 나누게 만들어라. 교수가 학생을 미는 게 아니라 학생이 교수를 끌어야 한다.
미팅 전날에만 일하는 습관을 버려라. 미팅을 빼먹지 마라. 프로젝트 미팅은 지난 미팅을 짧게 리뷰하면서 시작하라.
마지막 문장이 실행 가능한 형태로 바꾸기 제일 쉬웠다. 지난 미팅 리뷰로 시작하려면 지난 미팅이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기록이 있으면 전날 몰아칠 필요도 줄어든다.
그림 5. 미팅 프로토콜
그림 5. 미팅 프로토콜
그림 5. 미팅 프로토콜
해외 대학원 지도 가이드들을 찾아보니 권하는 방식이 대체로 같았다. 임페리얼, 모내시, 워싱턴대의 대학원 핸드북에 공통으로 나오는 항목만 추리면 이렇다.
미팅 전에 아젠다를 써서 미리 보낸다. 한 장을 넘기지 않는다. 현재 상태를 두 문장, 진전을 세 줄, 막힌 것을 두 줄로 적고 읽어와야 할 파일이나 그림을 링크로 건다.
질문에 번호를 붙인다. 그래야 둘 다 어디까지 답했는지 안다. 각 질문에 예상 소요 시간을 적고 우선순위를 매긴다. 다음 미팅까지 진도를 내는 데 가장 도움이 될 항목을 앞에 둔다.
미팅 뒤에는 결정과 담당과 마감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게 다음 미팅의 첫 5분이 된다.
내 규칙 - 금요일에 주간 문서를 쓴다. 이번 주 진전과 실패, 다음 주 계획. - 월요일에 그 문서를 아젠다로 바꿔 보낸다. - 미팅 당일 같은 문서에 결정 사항을 덧쓴다. 문서를 새로 만들지 않고 계속 이어 쓴다. - 막히면 3일 이상 혼자 들고 있지 않는다. 사흘째 되는 날 메시지를 보낸다.

3. 읽기와 쓰기

3.1 논문은 세 번 읽는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관련 연구를 철저히 조사하라. 최고 수준의 논문을 아주 많이 읽고 배워라. 그들은 어떻게 중요한 문제를 고르고 푸는가.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는가. 어떻게 제시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가.
많이 읽으라는 말은 쉬운데 문제는 시간이다. 케샤브의 세 번 읽기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미는 방식을 버리고 세 번에 나눠 각 회독의 목적을 다르게 잡는 방법이다.
그림 4. 논문 세 번 읽기
그림 4. 논문 세 번 읽기
그림 4. 논문 세 번 읽기
1회독은 5분에서 10분. 제목, 초록, 서론, 소제목, 결론, 참고문헌만 본다. 목적은 읽을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 하나다. 대부분은 여기서 덮는 게 정상이다.
2회독은 한 시간쯤. 본문과 그림, 표를 정독하되 증명은 건너뛴다.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으로 뒷받침하는지 잡는다. 안 읽은 관련 문헌은 메모해 큐에 넣는다.
3회독은 네 시간 이상. 저자가 된 셈 치고 결과를 재구성한다. 가정을 하나씩 의심하며 직접 돌려본다. 이 단계까지 가는 논문이 1년에 열 편만 돼도 많다.
새 분야를 훑을 때 쓰는 방법도 같이 나와 있다. 키워드로 최근 논문 서너 편을 찾아 1회독만 돌리고 각 논문의 관련 연구 절을 읽는다. 거기서 반복해 나오는 이름과 학회가 그 분야의 중심이다.

3.2 읽은 것을 어디에 쌓을 것인가

원문에는 없지만 실무에서 제일 자주 무너지는 지점이라 따로 적는다. 논문은 읽었는데 반년 뒤에 아무것도 안 남는 문제.
해외 대학원생들이 많이 쓰는 조합은 조테로와 옵시디언이다. 조테로가 서지 정보와 PDF, 인용을 관리하고 옵시디언이 읽기 노트와 종합, 초고를 맡는다. 논문 한 편당 노트 하나를 만들고 저자연도_짧은제목 형식으로 이름을 붙인다. PDF에 남긴 하이라이트와 메모를 그 노트로 끌어오면 나중에 문헌 검토를 쓸 때 노트만 이어 붙여도 초안이 된다.
나는 노션을 쓰고 있으니 도구는 바꾸되 구조만 가져오기로 했다. 논문 데이터베이스 하나, 항목당 노트 하나, 그리고 그 노트에 반드시 들어가는 세 줄. 이 논문의 주장, 나를 설득시킨 증거, 내가 의심하는 부분. 세 줄이 안 채워지면 아직 2회독이 끝난 게 아니다.

3.3 쓰기를 습관으로

쓰는 습관을 만들어라. 읽은 중요한 논문을 두고 에세이도 써라.
쓰기는 중요하고 시간이 걸린다. 반복해서 읽으며 고쳐라. 제3자의 눈으로 읽어라.
읽은 논문마다 에세이를 쓰라는 건 두 가지를 동시에 노린 조언이다. 읽은 게 남고 쓰는 근육이 붙는다.
그림 9. 몰아 쓰기와 습관 쓰기
그림 9. 몰아 쓰기와 습관 쓰기
그림 9. 몰아 쓰기와 습관 쓰기
폴 실비아의 책이 이 문제를 제일 냉정하게 다룬다. 긴 시간이 생기면 그때 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몰아 쓰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시간은 나지 않고 만드는 것이라고 못 박는다. 많이 쓰려면 일정을 짜고 그걸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고 본인은 평일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쓴다.
혼자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방식도 있다. 셧업 앤 라이트는 2007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에서 시작해 지금은 60여 개국 10만 명 규모로 퍼졌다. 정해진 시간에 모여 각자 쓰고 짧게 쉬는 동안만 대화한다. 서로의 글을 낭독하거나 합평하지 않는 게 규칙이다. 피드백이 없기 때문에 부담 없이 앉을 수 있다.
내 규칙 - 오전 90분을 쓰기로 고정한다. 실험 결과가 없어도 쓴다. 없으면 없다고 쓴다. - 3회독한 논문은 반드시 짧은 소감문을 남긴다. - 초고는 소리 내어 읽는다. 읽다 걸리는 문장이 독자도 걸리는 문장이다.

4. 태도

원문의 이 대목은 짧은 문장들의 나열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좋았다. 해석의 여지가 적다.
똑똑하게 일하는 게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다만 열심히도 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열심히는 최소 조건이다.
디테일에 신경 쓰되 큰 그림을 놓치지 마라.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한다. 뛰어난 사람은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도 잘한다.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하지 마라. 대신 탁월함을 추구하라.
무언가를 하겠다고 약속했으면 반드시 해내라.
지각하지 마라. 그렇다고 너무 일찍 오는 것도 좋지 않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더 중요한 건, 남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자주 어길 것 같은 항목은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다. 데이터 정합성 확인, 실패한 실험 정리, 남의 코드 재현. 티가 안 나고 재미도 없다. 그런데 내 트랙에서 실제로 판을 뒤집은 순간들은 대개 그런 잡일에서 나왔다. 라벨이 깨진 걸 발견한 것도, 코드와 논문이 다르다는 걸 잡아낸 것도 전부 누가 시키지 않은 확인 작업이었다.
학생이지만 프로답게 굴라는 말도 있었다. 첫인상이 중요하니 깔끔하고 단정하게 하고 다녀라, 악수는 눈을 보면서 적당한 힘으로 해라, 대화할 때 눈을 맞춰라. 사소해 보이지만 학회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 걸 때 실제로 차이를 만드는 것들이다.

5. 버티는 법

학부에서 대학원으로 오면 하는 일이 바뀐다. 남이 이미 발견한 것을 배우는 일에서, 내가 무엇을 연구할지 찾는 일로.
스트레스가 오는 곳도 늘어난다. 연구 진도, 가치 있는 질문을 만드는 일, 지도교수와의 관계, 동료와의 비교, 돈, 자기 의심, 거절, 비판.
그중 원문이 제일 길게 다룬 게 임포스터 신드롬이었다. 지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자신이 가짜라고 느끼는 심리 경험.
그림 8. 임포스터 신드롬이 도는 방식
그림 8. 임포스터 신드롬이 도는 방식
그림 8. 임포스터 신드롬이 도는 방식
찾아보니 흔한 정도가 아니었다. 2024년 조사에서 심리·상담 같은 응용 분야 대학원생의 65.1퍼센트가 뚜렷한 수준의 임포스터 경험을 보고했다. STEM 분야 여성 대학원생을 본 2025년 연구에서는 97.5퍼센트가 중간 이상의 임포스터 경험을 보고했고 그 정도가 번아웃과 중도포기 고려를 예측했다.
원문에 있던 관점이 도움이 됐다. 스트레스를 늘 받는다면 그건 좋은 신호다. 더 나아지려고 애쓰고 있다는 뜻이니까. 다만 자신을 갈아 넣지는 마라. 스트레스는 우울, 번아웃과 강하게 붙어 다닌다.
무엇이 도움이 되는가. 그 답도 단순했다. 도움을 요청하라. 동료와 같이 논의하라. 좋은 지도교수와 자주 이야기하라. 그리고 연구의 가치와 자기 가치를 같은 것으로 두지 마라. 비판은 건설적 피드백이고 성장의 재료다.
내 연구의 주인은 나지 지도교수가 아니라는 말도 함께 있었다. 초기에는 안내가 더 필요하지만 방향을 정하는 건 결국 내 몫이다.
농담처럼 붙어 있던 한 줄이 오래 남는다. 연구자들은 학술 토론에서 남의 아이디어를 비판하고 반박하는 데 익숙한데, 일상 대화에서는 조심하는 게 좋다. 상대는 그런 대화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내 규칙 - 막히면 사흘 안에 말한다. 혼자 버티는 걸 성실함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 거절 메일을 받으면 그날은 논문을 안 고친다. 하루 두고 다음 날 리뷰를 읽는다. - 실패 로그와 별도로, 잘된 일도 적는다. 안 적으면 기억에 안 남는다.

6. 학회를 어떻게 쓸 것인가

원문에는 학회 참석 전후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절차 단위로 적혀 있었다. 행정 절차와 네트워킹 준비 두 갈래다.
그림 7. 학회 한 번을 제대로 쓰는 일정
그림 7. 학회 한 번을 제대로 쓰는 일정
그림 7. 학회 한 번을 제대로 쓰는 일정

6.1 준비와 행정

출장 허가를 받은 뒤에 예상 비용을 지도교수와 공유한다. 등록비, 항공, 숙박, 필요하면 비자 비용까지. 경유가 있으면 환승 시간이 충분하되 과하지 않게 잡는다.
공식 출장 기간은 학회 일정 앞뒤로 하루씩이다. 더 늘리고 싶으면 학회 앞뒤에 붙는 워크숍이 있는지 확인하거나 다른 나라 연구자와 연구 논의 일정을 잡는 방법이 있다. 어느 쪽이든 먼저 상의하고 결정한다.
카드를 확인한 뒤 예약하고 영수증을 전부 모아둔다. 등록 영수증, 전자항공권, 카드매출전표, 발권대행수수료, 숙박 예약 내역, 비자 관련 서류.
학회가 끝난 뒤에 필요한 것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배지 사진, 출입국사실증명원, 숙박 영수증과 투숙 기록. 학회가 끝나기 전에 챙겨두지 않으면 나중에 구하기 어렵다.
메일을 보낼 때는 지도교수를 참조에 넣는다. 과정을 투명하게 두는 게 원칙이다.

6.2 온라인에 내 자리를 만든다

학회에서 만난 사람이 나를 찾아볼 곳이 있어야 한다. 원문은 소셜 계정과 개인 웹페이지를 권했다. 깃허브 기반, 도메인을 산 경우, 노션 기반까지 실제 사례가 붙어 있었다.
웹페이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경고도 있었다. 하루 한두 시간씩 일주일 정도를 잡으라는 조언이다.
구글 스칼라 프로필도 같이 만들어두면 좋다. 사진과 소속, 키워드를 채운 프로필이 검색과 추천에서 더 위에 노출되고 개인 웹페이지가 없을 때는 그 역할을 대신한다. 소속이 바뀌어도 기록이 이어진다는 것도 장점이다.
소셜 쪽은 지형이 바뀌는 중이다. 2023년부터 2025년 초까지 학계 사용자 30만 명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표본의 18퍼센트가 트위터에서 블루스카이로 옮겼다. 전환 비율은 분야와 정치적 발언 여부, 기존 참여도에 따라 크게 갈렸고 논문 수 같은 전통적 지표와는 상관이 없었다. 영향력 있는 과학자 2만 명 이상이 블루스카이에 매핑됐다는 집계도 나왔다. 머신러닝 쪽은 키워드 기반 피드가 따로 돌아간다.
지금은 두 곳 다 열어두는 게 안전하다. 어디에 사람이 남을지 아직 갈리는 중이다.

6.3 사전 연락

세 주 전쯤 만나고 싶은 사람 목록을 만든다. 채택 논문 목록과 소셜을 훑으면 누가 오는지 대충 보인다.
여기서 원문의 조언이 현실적이었다. 아주 유명한 연구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기대를 너무 높게 잡지 마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고 일정도 이미 차 있다. 대신 그 연구자의 학생을 노려라. 학생도 바쁘지만 답장할 가능성은 훨씬 높다.
연락은 한 주 전쯤이 적당하다. 소개해 줄 사람이 있으면 답장률이 크게 올라간다. 지도교수, 랩 동료, 예전 동료를 활용하고 소셜에서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요청은 쉽고 단순하게 만든다. 상대가 답하기 어려운 열린 질문을 던지면 안 된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호한 메일은 답장을 못 받는다.
해외 아웃리치 가이드들이 제시하는 규격도 대체로 일치한다. 150에서 200단어, 세 문단. 첫 문단은 상대 연구 이야기, 둘째 문단은 내 소개, 셋째 문단은 구체적인 요청. 실패하는 메일의 공통점은 세 가지다. 본론까지 너무 길고 협업하고 싶다처럼 막연하고 상대 연구를 안 읽은 티가 난다. 앞으로 몇 주 안에 20분 정도 통화 가능하실까요처럼 답하기 쉬운 형태로 닫는 게 좋다.
만나기로 한 사람의 논문은 읽고 간다. 원문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연구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 하나는 내 연구를 이미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특히 초기 경력 연구자일수록 그렇다. 대화의 출발점으로 이만한 게 없다.

6.4 현장과 사후

가장 좋은 네트워킹 자리는 내 관심사와 맞는 워크숍이라는 게 원문의 경험담이었다. 같은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 방에 모이기 때문이다. 망설이지 말고 자기소개를 하고 커피를 청하고 30초 안에 내 일을 말하고 상대 일을 묻는다.
리셉션과 만찬, 저녁 파티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나면 지치는 게 당연하지만 연결은 그런 자리에서 생긴다.
공통 경험이 있으면 대화가 붙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취미든 음악이든 출신 지역이든. 연구 이야기만으로는 오래 못 간다.
용기를 내라는 말로 끝난다. 낯선 사람에게 먼저 자기소개를 해서 벌어질 최악은 상대가 잊어버리는 것이고 최선은 상대가 나를 알게 되는 것이다.
돌아와서는 만난 사람들에게 짧은 감사 메일을 보낸다. 다음에 기억할 가능성이 올라간다.
내 규칙 - 컨택 리스트를 만들고 만난 날짜, 대화 내용, 감사 메일 발송 여부를 기록한다. - 30초 자기소개를 미리 써서 외운다. 내가 무엇을 왜 하는지 두 문장. - 워크숍은 본회의보다 우선순위를 높게 둔다.

7. 학회 지도를 내 분야로 옮기기

원문에는 어떤 학회와 저널을 목표로 할지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매년 노려야 하는 두 곳, 그 위의 톱 학회들, 그보다 한 단계 아래지만 좋은 학회들, 아이디어 단계에서 가는 워크숍, 그리고 저널.
문제는 그 목록이 모바일·네트워킹 분야 기준이라는 점이다. 나는 다른 방을 쓴다. 그래서 층위 구조는 그대로 두고 이름만 바꿔봤다.
그림 6. 학회 지도를 내 분야로 옮기기
그림 6. 학회 지도를 내 분야로 옮기기
그림 6. 학회 지도를 내 분야로 옮기기
원문에 있던 배경 설명이 이 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예전에는 이동이 어려워서 사람들이 짧고 미완성인 논문을 지역 학회에 내고 학회에 참석해 피드백을 받은 뒤 더 성숙한 저널 논문을 썼다. 저널이 가치 있게 여겨졌고 대학 도서관이 소장했다. 지금은 이동이 쉬워졌고 논문이 인터넷에 올라간다. 기술이 빠르게 바뀌는 컴퓨터과학에서는 저널 논문이 실제로 출판될 때쯤 이미 낡는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는 최상위 학회 논문이 아주 높게 평가된다.
다만 한국의 현실도 함께 적혀 있었다. 학회 논문이 많을수록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만 국내에서 연구비를 받고 좋은 자리를 얻으려면 저널 논문도 필요하다. 그래서 최상위 학회를 목표로 하되 저널도 함께 쓴다.
내 분야로 옮기면 학회 쪽은 신경망 정보처리 학회와 국제 기계학습 학회, 표현 학습 학회가 매년 보는 곳이 되고 언어와 해석 쪽은 계산언어학회와 자연어처리 학회가 주 무대다. 구글 스칼라의 h5 지수로 보면 NeurIPS가 337로 가장 높고 ICLR 304, ICML 268 순이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피드백을 받는 자리는 각 학회에 붙는 워크숍이고 언어 모델 내부를 분석하는 쪽은 BlackboxNLP가 오래된 자리다. 저널은 TMLR과 JMLR, TACL이 대응한다.
오른쪽 대응은 내가 옮긴 것이라 정답은 아니다. 다만 층위를 유지한 채 옮기니 내가 어디를 보고 있어야 하는지가 훨씬 분명해졌다.

8. 왜에 답하는 제도적 형태

원문에는 없는 항목인데, 내 분야에서 항상 왜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 제도로 굳어진 부분이 있어서 적어둔다.
NeurIPS는 논문 체크리스트를 필수로 요구한다. 재현성과 투명성, 연구 윤리, 사회적 영향을 저자가 스스로 점검하게 만드는 장치다. 체크리스트를 포함하지 않은 논문은 심사 전에 반려된다. 2025년 심사에서는 리뷰어의 70퍼센트가 이 체크리스트가 제출물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이런 장치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재현성 문제가 있다. 체크리스트, 코드 공개, 재현 챌린지 같은 것들이 그 구조적 대응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걸 규제가 아니라 왜를 강제로 적게 만드는 양식으로 본다. 왜 이 하이퍼파라미터인가, 시드는 몇 개이고 왜 그만큼인가, 어떤 결과가 나오면 가설이 기각되는가. 실험을 돌리기 전에 적어두면 나중에 결과를 보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내 규칙 - 실험 전에 기각 조건을 적는다. 이 값이 이 범위를 벗어나면 가설을 버린다는 문장. - 사후에 지표를 바꾸면 바꿨다고 표시한다. 탐색적 분석과 확증적 분석을 섞지 않는다. - 코드와 설정은 처음부터 공개할 수 있는 상태로 관리한다.

9. 시간

원문에서 제일 무거운 문장이 여기 있었다.
위대함을 이루려면 다른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 연인, 친구, 취미 같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결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전부 다 할 수는 없다.
동시에 대학원 시절을 최대한 즐기라는 말도 있었다.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면 자유가 줄고 책임은 엄격해진다. 동료들은 랩 동료 같지 않을 것이다. 친구를 많이 만들라는 조언도 함께 있었다.
두 조언이 모순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순서 문제라고 읽었다. 무엇을 지킬지 먼저 정하면 나머지에서 즐길 수 있고 정하지 않으면 전부를 조금씩 잃는다.
그림 10. 한 주는 168시간이고, 그게 전부다
그림 10. 한 주는 168시간이고, 그게 전부다
그림 10. 한 주는 168시간이고, 그게 전부다
내가 정한 순서는 깊은 작업 블록을 먼저 잡고 나머지를 그 주위에 채우는 것이다. 제일 머리가 맑은 시간을 회의와 잡무에 먼저 내주면, 실험 설계와 쓰기 같은 진짜 일에는 남는 시간만 돌아온다. 하루 세 시간을 지키면 한 학기에 300시간이 넘는다.
원문에 있던 리더십 이야기도 여기 붙여둔다. 리더십이 늘 목소리 크고 앞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나설 수 있게 두는 것일 때도 있다. 좋은 리더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책임진다. 최선의 결정은 팀에 가장 좋은 것이지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아니다. 인기 없는 결정을 내렸다면 왜 그렇게 했는지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좋은 리더가 반드시 좋아할 만한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존경은 받아야 한다.

10. 90일 실행 계획

읽고 끝내지 않기 위해 기간을 끊었다.
첫 2주 - 문제 목록 문서를 만들고 후보 다섯 개를 격자에 배치한다. - 주간 문서 양식을 만든다. 진전, 실패, 다음 주 계획, 질문 네 칸. - 실패 로그를 연다. 지금까지 죽은 가설부터 소급해서 적는다. - 오전 90분 쓰기 블록을 달력에 반복 일정으로 넣는다.
첫 달 - 금요일 주간 문서와 월요일 아젠다 사이클을 네 번 돌린다. - 3회독까지 간 논문 두 편에 소감문을 쓴다. - 구글 스칼라 프로필을 채운다.
둘째 달 - 개인 웹페이지 초판을 올린다. 완성도보다 존재가 먼저다. - 내 분야 학회 마감일을 전부 캘린더에 넣는다. 내부 마감은 2주 앞에 따로. - 실험 사전 등록 양식을 만든다. 가설, 기각 조건, 시드 수, 지표.
셋째 달 - 문제 목록을 다시 매긴다. 칸이 바뀐 이유를 적는다. - 참석할 학회를 하나 정하고 D-90 항목부터 시작한다. - 지금까지의 실패 로그를 읽고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지 본다.